마리 앙투아네트 향수로 인해 바뀐 프랑스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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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향수로 인해 바뀐 프랑스 운명

by today paris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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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향수 때문에 처형된 루이 16 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루이 16세 일행이 혁명단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향수 냄새 때문에 붙잡히는 일이 발생한 사건이다.

 

이미지출저 : Institut ANCA Holistic Beauty & Wellness

1789.7.14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크는 지금 콩코드 광장에 있는 뛸레리 궁정 안 부속 감옥에 갇혀있다가 스웨덴 귀족의 도움을 받아 그 옆 건물이자 오늘날에는 해양성인 곳에 혁명군의 눈을 피해 1주일 숨어 지내게 된다. 루이 16세외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와 후송들을 데리로 벨기에로 도망갈 계획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약간의 염문설이 돌았던 마리 앙투와네트를 흠모한 스웨덴 귀족은 왕과 왕비가 타는 마차를 제공하게 되는데 마차안에 식당과 화장실마저 갖추어진 대규모의 큰 마차인지라 신하들은 이동을 할 경우 눈에 뜨일 수 있다고

반대하지만 일주일 이상 이동하는 입장이라 그래도 마차만큼은 크게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차 안에는 많은 식량과 술,옷,화장품 도구마저 다 마련하다 보니 마차는 점점 더 크고 화려했다.

 

 

이렇게 화려한 마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무사히 벨기에 국경지대인 바렌이란 지역까지 도착하게 되자 국경선을 코 앞에 두고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쉬면서 긴장을 풀고 코에 바람을 넣고자 마차에서 내려서 산책을 한다.

마차에서 내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크는 혹시 대비 허름한 평민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 할 거라 생각하고 마을을 산책하게 되는데 이 작은 바렌이란 시골마을에 화려한 마차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마차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하고 불안한 맘을 가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최대한 빨리 뛰어 사람들을 뚫고 마차에 오르게 된다.

 

바로 이 순간...! 뛰다 보면 가속도가 붙에 되는데 마차에 뛰어오늘 마리 앙투와네트한테서 짙은 향수 냄새가 풍기게 된다고..

마차는 화려한데 복장은 허름한 것도 수상한데...바로 결정타인 향수!! 그 당시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귀족층이었기 때문이다.

 

바렌 마을인은 그들을 수상히 여기고 바로 혁명단에게 신고를 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탈출은 수포로 돌아가 다시 파리로 끌려오게 되고 그 당시 감옥 중에 가장 엄격한 콩시에 쥬리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미지출저 : fr.wikipedia.org

 

루이 16세 

1793 년 1월 21일 루이 16세 처형식이 콩코드 광장에서 열리게 되고 처형 날 아침, 프랑스에 살고 있는 영국신부와 함께 처형 장소까지 동승해 주기를 마지막으로 요구했다.

 

처형장으로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루이 16세는 차분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었고 건데받은 성경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맞이 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콩코드 광장에는 단두대기 준비 되어 있었고 시민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려와 있었으며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병사들은 왕을 둘러싼 상태에서 루이 16세는 함께 동승한 신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내가 죽더라도 신부님에게는 해를 끼치지 마시오. 프랑스 왕으로써의 마지막 명령이오''라고...

 

병사들이 왕의 옷을 벗기려 하자 단호하게 손짓을 하며 이들을 저지 했으며 이런 위엄있는 왕의 모습에 병사들은 주춤했고 스스로 옷을 벗고 나서 신부의 팔에 의지하며 단두대로 걸어갔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오르자 병사들은 북을 두두리기 시작했고 루이 16세는 큰 목소리로 

''나는 지금 죽지만 나는 나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또한 나를 죽게 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노라! 프랑스 땅에 다시는 이런 무고한 피가 흐르지 않기를 하느님께 기도하노라''

 

루이 16세가 단두대 앞에 무릎을 꿇고 칼날 아래 목을 들이는 순간 그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그러자 나이 어린 병사가 얼른 단두대로 뛰어 올라가더니 잘린 머리를 높이 쳐들었고 어린 병사의 손에 프랑스 국왕의 머리가 들려진 사건이다.

 

이미지출저 : flickr

곧이어 사람들의 함성이 터지고 왕의 얼굴에 침을 뱉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만세!혁명단 만세!!''를 외치면서 저마다 손수건,옷가지를 꺼내 왕의 피를 묻히기 시작했고 루이 16세의 피를 묻힘으로써 그들은 그의 죽음을 기념했던 것이다.

 

그 후 9개월 뒤 1793년 10월 16일 수요일 아침 9시30분.아름답고 화련한 외모의 마리 앙뚜와네크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때에는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췌하기 그지없이 거의 노인에 가까운 모습이였다고 한다.

  

이미지출저 : fr.wikipedia.org

오늘날까지도 앙투아네트의 사랑과 화려함은 미워할 수 없는 여성의 이미지로 영화속에 책 속에 남겨져 있다.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모습에서는 같은 여자로써 본받을 점이지만 어쩜 이 향수 냄새가 아니였으면 프랑스 역사가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루이 16세는 사치스럽지 않았다 

 

 

화제를 바뀌어서 또 하나 가장 최신 이야기로 미국의 역학박사가 1013년 반대 논문을 하나 제시했는데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는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점이 주된 내용이다.

 

사실 그 당시 국고의 3%가 순수히 왕과 왕비를 위해 쓸수 있는 돈인데 단 한 번도 다 쓰지 않은 왕이 바로 루이 16세.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인 국가 재정난은 바로 죽으면서까지 유언으로 ''나는 전투을 너무 사랑했었다'' 라고 말한 전쟁의 왕 루이 14세가 전쟁을 하기 위해 원정을 나가다 보니 도을 많이 쓸 수 밖에 없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며 루이 15세는 가장 사치스럽고 여성편력이 강했으므로(목걸이 사건의 왕) 국고는 더 힘들어졌다는게 배경 설명이다.

 

그리고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치스럽다는 이미지는 목걸이 사건을 계기로 혁명군들이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낸 소문이었다는 반론이다. 

 

17세기의 이야기라 어느게 확실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미국 역학박사의 연구 분석 이야기도 일리가 있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스토리를 마무리 하면서 참고로 단두대를 만들었던 그 당시 의학박사의 이름이 ''기요틴'' 이며 프랑스어로 단두대를 그의 이름을 붙여''기요틴''이라고 부르는데 안타깝게도 그도 그가 만든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

 

그가 단두대를 발명했을 때에는 본인도 처형당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끼....?

 

비로 알수 없는 내일이지만 오늘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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