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회사가 2 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에서 Fanta (판타)를 발명한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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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회사가 2 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에서 Fanta (판타)를 발명한 이유는 ?

by today paris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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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탄산음료 중 하나이다.

오늘날 Fanta는 선명한 오렌지 색상과 톡 쏘는 과일맛으로 인기가 많지만 처음 유래는 신선한 시장에서 남은 식자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코카콜라회사의 독일지사는 제2 차 세계 대전중에 코카 시럽의 수입을 막는 무거운 금수조치로 인해 Fanta를 개발하게 된다.

 

코카콜라의 기록서인 "Coca-Cola, God and my homeland"라는 책에서 마크 판다가스트는 Fanta의 기원으로

1923년 로버트 우드러프가 코카콜라 회사의 사장으로 선출되었을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한다.

          

사장이 된 우드러프의 거창한 꿈은 코카콜라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제품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카콜라는 그다지 국제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는데 그 후 우드러프의 후원하에 국제 수출 담당부를

설립하게 된다. 이로 인해 27 개국 이상에 병입 공장이 설립되었으며 코카콜라가 이들 모두를 감독할 수 있게 되어 점차 인지도를 높여갔다고 한다.

 

 

코카콜라 회사는 1928 년 암스테르담 하계 올림픽을 후원하게 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자, 코카콜라 로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포스터, 상점 벽면 등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를 했으며, 그 덕분에 코카콜라는 미국의 애국심의 아이콘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를 마련한다.

 

이 덕분에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자 파워라는 미국인이 독일 지사 책임자로 임명이 되고 아주 뛰어난 세일즈맨으로 유명했으나 이런 파격적인 영업기술에도 불구하고 회계나 미납 송장 등의 관리 부주의로 인해 독일지사는 실질적인

재정 곤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33 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 시 제3제국 통치가 시작되면서 독일과 코카콜라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데 코카콜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독일인 막스 키스가 등장, 회사의 재정을 절약하기 위해 독일 경제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자 독일의 노동자들에게 코카콜라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아이콘이 아니라 독일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브랜드로 코카콜라의 명성을 다시 확립하고자 했다.

 

 

1936 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은 지난번처럼 코카콜라의 이상적인 마케팅 대상이 되었고 후원과 함께 엄청난 홍보에 힘쓴 결과 코카콜라 로고는 독일의 여러 스포츠 대회 또는 심지어 히틀러 청소년 모임을 위한 트럭에서 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막스 키스는 코카콜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히틀러에 대한 나치의 경의를 표하였는데 그가 실제로 나치당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막스 키스는 제3 제국과 협력하여 사업을 계속 이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드러프는 막스 키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두 사람의 최우선 과제인 코카콜라 번영을 다짐하지만, 그 당시 독일 정부는 외국기업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2 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을 적으로 지명하자 모든 무역은 금지되고 우드러프와 막스 키스는 당분간 인연을 끊어야만 했다.

 

혼자 남은 막스 키스는 비밀 레시피인 콜라 시럽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계속하기로 결정, 독일 청량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막스 키스는 코카콜라와 모호하게 닮은 탄산음료 (카페인과 알 수 없는 맛의 혼합물)을 만들도록 화학자들에게 의뢰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제품은 비밀 코카콜라 레시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시장에서 남은 식자재로 사이다를 위해 압착하여 얻은 사과 섬유와 우유 응고의 액체의 부산물인 유청과 같은 과일 펄프로 만든 결과물은 오늘날 발견되는 진저에일에 가까운 반투명 베이지 색이었다고 한다.

 

막스 키스는 영업팀에게 새로운 이름을 위해 환상적으로 지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음료 이름이 Fanta 였다고 .

그리고 환상적으로 대박이!!

 

 

코카콜라 같은 탄산음료에 대한 대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인기가 폭발했으며, 달콤한 음료로서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고 수프와 스튜의 설탕을 대신한 첨가제로써도 인기를 얻어 상점의 필수품이 된다.

 

막스 키스는 모든 인맥을 이용하여 Fanta를 유럽 전역에 배포하였으며 혼자 고립되어 지켜온 코카콜라 독일 지사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약 300 만 케이스의 환타를 판매하게 된다는 놀라운 실적을 남긴다.

 

연합군이 마침내 독일 공장을 장악하자 Fanta 생산이 중단되었고 막스 키스는 환타로 낸 모든 생산 수익을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히틀러와 나치들을 위한 음료라는 비난과 함께 오해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환타는 1955 년 이탈리아에서 출시되어 새롭게 Fanta Orange로 재탄생되었으며 

이태리산 감귤류로 만들어진다.

 

2015년 코카콜라 회사는 Fanta의 75 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광고를 방영하게 되는데 "좋은 옛 시절 "이라며 선전하게 되는데 2 차 세계 대전 독일에 대한 명백한 언급으로 인해 비판적인 반발에 직면하게 되자 동영상을 삭제하고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Fanta의 기원은 아마도 도덕적 모호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될 때 일어난 한 예인 것 같다.

 

한때 제3 제국 시대에 남은 식자재로 탄생한 음료가 이탈리아에서는 감귤로 만든 탄산음료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즐겨 찾는 음료가 되었다.

  

2020/10/29 - [소소한 지식 톡] - 코카 콜라 라이트 등 저당분 탄산 음료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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