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후세에 전해진 일화와 함께 작은 비밀스러운 구설로 구성된다고 한다. 프랑스 모든 시대의 짧지만 좀 비정상적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모든 시대의 짧은 비정상적인 일화이다.
악마의 술 "샴페인"
18 세기까지 프랑스 인들은 샴페인 거품이 악마의 작품이라고 믿었다. 1694 년 루이 14 세의 의사는 이 음료가 통풍에 좋지 않다는 구실로 그에게 샴페인을 마시는 것을 금지고... 지금은 축제 기간에 마시는 비싼 술이건만...
2020/10/09 - [냠냠 요리 & 맛집톡] - 여자가 마시고 나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유일한 술! 샴페인
미국 루이지애나를 판 나폴레옹
루이 14 세 당시 프랑스에 인수 된 루이지애나는 1 만 2 천 명의 정착민이 살고 있었으나 너무 멀어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으며, 종종 이곳에 사는 정착민들은 말라리아에 병들고 시달리면서 인디언들과 싸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 당시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자 나폴레옹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부동산 거래를 하기로 결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매각하는 것이었다! Talleyrand는 그 당시 가격으로 8 천만 프랑으로 추정했고 미국인들은 1803 년 12 월에 이 땅을 매입하게 되었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스파이
1905 년과 1906 년 동안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 마타 하리 본명)는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댄서였다. 그녀의 유명세가 1907 년 이후 감소하게 되자 파리로 이주하여 그 매력을 살리게 되는데 운이 없게도 전쟁이 선포되고 빚이 가득한 그녀는 독일에 도착하여 헤이그에서 독일 영사를 만나게 된다. 그 독일 영사는 프랑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의 빚을 갚아주겠다고 제안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H 21 요원 인 Mata Hari가 탄생하게 된 이유이다. 돈과 보석에 굶주린 그녀는 이중 요원이 되어 정보를 프랑스에도 팔았다고...
프랑스의 제주도 코르시카섬을 인수하고 미래의 황제를 산 루이 15세
1768 년 5 월, 루이 15 세는 이태리 제노아시가 프랑스에 빚진 2 백만 파운드의 부채를 대신해서 코르시카 섬의 교환을 수락하게 된다. 이 거래에 불만족스러운 코르시 카인 들은 그곳으로 보내진 7 천 5 백명의 프랑스인들을 구타하면서 저항하게 되지만 이 폭동 1 년 후 2 만 2 천 명의 프랑스 인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이 곳에 상륙하게 되는데
"내 아들은 코르시카의 한을 풀어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부부를 포함하여 약 100 명의 코르시카 인 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말을 한 부부의 부인은 임신 중이었는데 3 개월 후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야하는 운명
1784 년 바스티유 감옥의 유지비는 당시 재정장관인 네케르와 루이 16세에게는 매우 비쌌다.
따라서 왕은 1784 년에 건물을 파괴하기로 결정했고 파리 건물의 건축가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왕의 이름이 새겨진 광장을 제안했다. 그는 그 중앙에 던전의 사슬과 볼트로 구성된 받침대와 "파괴된 탑을 향해 해방의 손을 내미는 왕''의 동상을 세우려고 계획했으며 이 작업은 비록 수행되지 않았지만 결국 절대 왕정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이 혁명으로 인해 파괴된다.
프랑스 인과 위생
19 세기 말 프랑스 인의 위생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부유한 사람들의 2 % 는 목욕을 하고 18 % 는 때때로 발을 씻고, 52 % 는 1 년에 8번 목욕을 했으며, 4 % 는 손을 씻고 마지막 (24 %)은 웅덩이에 빠졌을 때만 물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물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너무 했다.
모든 드레스에 반기를 든 의사들 !
옛날 귀족들 사이에서 롱 드레스보다 더 우아한 것은 없다. 그러나 길을 쓸고 다니는 이 롱드레스는 진짜 수많은 세균의 보금자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1900년도 로마에서 열린 의회에서 훌륭한 의사들이 모여 이 롱드레스에 대한 심각성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좀 잠잠하다가 2 년 후, 그들은 위와 척추에 문제를 줄 수 있는 코르셋 또한 문제가 많다고 선언했다. 도대체 뭘 입으란 말입니까? 귀족녀들의 반응!
억울했던 고양이의 인생역전
한때 고양이가 흑사병 또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오해해서 불행의 상징이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면서 나중에 고양이는 쥐를 사냥하기 위해 너도 나도 없이 귀하게 스카우트한 동물이 되었다.
19 세기에 생쥐를 제거 할 수 있는 뛰어난 수단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는 사랑받기 시작했으며, 주인들은 그런 고양이에게 맛나는 걸 주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애완동물이 되었다.
이 시대흐름에 맞춰 부르주아들은 부를 상징하기 위해 집에 고양이 몇 마리를 두었는데 일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였다고 한다.
글 한마디로 대세가 된 수염!
프랑스 고전 극작가 몰리에르는 여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있을때 "측면 수염의 전능함"이라는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이후 1848년에 황제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에서부터 1944년 프랑스를 해방시킨 샤를 드골 대통령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아돌프 티에르라는 인물을 빼고는 모든 황제이자 대통령들이 턱수염이나 콧수염을 반드시 길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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