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와 한국 영화의 교류
제7 예술의 요람인 프랑스 영화는 그 어떤 것 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영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는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시기도 있었다.
특히 한국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많은 한국 감독들이 누벨바그 로 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고...
프랑스에 한국 영화가 처음 으로 소개된 것은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배용균 감독 작품으로 시작해서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꾸준히 한국영화 축제가 있었으며 2005년에는 한국영화 회고전이 열려 한국에서 상영되지 못한 우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2000년 초 일본, 홍콩과 또 다른 매력으로 프랑스 관객들에게 꾸준한 호응을 얻은 한국영화들은 취화선(임권택),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에서 한국의 전통이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국적인 영화를 비롯해 장화 홍련(김지운), 올드 보이(박 찬욱), 사마리아(김기덕), 살인의 추억 등이 있고, 한국영화로써 처음으로 상당한 상영수를 차지한 괴물 (봉준호)이 2006년 11월 22일 개봉되었으며, 2006년에는 한국에서도 한불 주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기획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영화 특별전을 선 보이도 했다.
또한 프랑스 유력 정치인인 쟈크 랑(Jacques Lang)은 미국에 의해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가 위협을 받자 한국영화 산업 보호에 앞장서서 지지해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이렇듯 한국과 프랑스는 "문화생활"이란 삶을 가치를 높이면서 나아가 경제 활동을 풍요롭게 하며, 문화적 정체성의 확보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생산과 경제 가치를 창출한다는데 뜻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자랑스럽게도 작년 2019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작품성의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칸느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 종료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함께한 한 해였다.
이 이후로도 최근 영화관에서는 심심치 않게 한국영화 상영을 찾아볼 수 있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프랑스 영화의 유명한 감독과 영화
예술성이 깊고 독창적인 감독들과 작품들이 많지만 영화사의 시대별 관련성에 중심을 두어 개인적인 몇 작품만 예를 들어 보았다.
1. 1930년대 장 르누아르(Jean Renoir)
기계 복제 시대 의 등장한 또 하나의 거장.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자연이나 풍경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인물들을 풍경 속에 배치했는데 이런 시각적인 모티브는 함몰과 분리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된다고... 즉 등장인물, 인간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절대로 자유로와 질 수 없다는 전제로 "로케 촬영"이라는 방법론으로 더욱 구체화된 계기를 만든다.
장 르누아르는 절제된 연출력이 가장 큰 특징으로 그는 움직이는 카메라에 따라 영화가 보여줄 수 있은 효과들에 대해서 연구한 최초의 감독이라고 한다.
1937년 위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과 1939년의 게임의 규칙 ;(la Règle du Jeu)가 대표작이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를 구현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또 당시 마르셀 까네 (Marcel Carné)는 제2차 세계대전 전 아주 대중적이고 희극적인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며 그 외에도 장 비고, 장 콕토 등이다.
2. 1960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누벨바그의 가장 혁명적인 감독으로 현대 영화를 얘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꼽히는데, 영화 비평가로 일하다가 새로운 영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프랑수와 투루포 (François Truffaut), 에릭 로메르(Eric Rohmer)와 함께 카메라를 들게 된다.
영화에 관한 영화를 창조해 낸 장 뤽 고다르는 "자기 반영적인 영화 작업"으로 영화는 매체로써 시각적 미적 효과와 정치적인 효과를 넓힐 수 있게 된다.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1960)는 단 4주 만에 약 9만 달러의 제작비로 완성된 작품에서는 모든 면이 그 전과 다른 영화 대사, 촬영 방법, 배우의 연기가 확실히 이 전과 다름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 1970년대의 베흐트랑 불리에 (Bertrand Blier)
종잡을 수 없는 파격과 유머로 된 새로운 영화로 관객을 당 항하게 만드는 현존하는 블랙유머의 최대 대가라고 불리는 그는, 1970년 중반부터 유명해진 그는 자작 소설을 영화화 한 발쉬즈 (les Valseuses: 왈츠)의 성공으로 시작해서, 대표작으로는 좋은 아버지 ;내 단짝 친구의 여자 두 영화 모두 자유롭고 죄의식 없는 섹슈얼리티의 추구라는 감독의 주제의식을 잘 담고 있다. 베흐트랑 블리에는 또 다른 베흐트랑 타베르니에 (Bertrand Tavernier) 함께 누벨 바그의 뒤를 이어 7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를 이끌어 갔으며 프랑스적인 지성과 유머를 가장 잘 표현한 감독이다.
4. 장 자크 베닉스 (Jean-Jacques Beinex)
베티 블루 는 누벨바그를 통과한 새로운 세대의 사랑 표현에 해당되며 남녀 간의 평범한 사랑 속에 내제 한 어떤 광기를 그려내는데 필립 지앙이라는 소설가의 소설을 영화화하여 베티 블루라 했다.
5. 루크 베송 (Luc Besson)
1988년에 연출한 "그랑 블루:큰 블루"에서 바다는 두 남자의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현장이자 사랑과 우정의 펼치는 거대한 무대라는 내용으로 아직까진 그가 흥행 위주의 작가로 접어들기 전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감독의 작품 중 제5 원소 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영화였으며 , "니키타"또한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6. 1990년 이후 프랑스 천재적인 영상파 레오스 까락스(Léos Carax)
5년 만에 완성한 멜로 영화로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이지만 전혀 흥행성을 의식하지 않은 전위적 예술 영상이라고 평가되는 대작 퐁네프의 연인 은 레오스 까락스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거리를 떠도는 알렉스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화가 미셀이 퐁네프 다리에서 만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싹트는 사랑의 감정을 다룬 내용이다. 줄거리도 단순한 듯하고, 스케일도 작은 듯한 이 작품은 제작 발표가 나면서 온 프랑스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으며 그 당시 프랑스 영화사의 여러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는데....
그 이유는 그가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이기도 했지만 로케이션 때문이라고...
파리 퐁네프 다리에서 촬영 도중 제작비가 떨어져 스폰서를 물색하다가 겨우 찾으니 당시 파리시장이었던 쟈크 시라크 대통령이 교통 체증이 너무 야기되어 촬영을 허락하지 못 하자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퐁네프 다리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를 마치게 되는데..... 10헥타르의 넓이로 당시 프랑스 영화 사상 최대 최고 규모였다고!!!!!!!!
이 세트를 완성하기까지 200만 개의 볼트와 못(참고로 에펠탑이 250만 개임), 축구장 12개를 합친 분량의 나무판자와
320톤이 넘는 버팀목, 스텝 인원들 합친 체중이 300톤이며, 1300박스의 와인을 마셨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13명,
망가진 차가 19대라고 한다. 나열한 것처럼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서 인지 레오스 까락스 감독은 그 후 일시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고.. 앓아누우신 듯!!
*로케이션:영화 및 영상물을 위한 야외 촬영지 또는 촬영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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