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샤넬의 찐 사랑 아서 카펠 ( 보이 ) Arthur Capel.
처음 그녀가 아서 카펠 (boy; 보이는 그의 별명으로 보이로 더 많이 알려짐)를 만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에티엔 발상과 거의 끝나갈 무렵 그와 함께 동반했던 승마장에서 멋진 보이 카펠을 만나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하게 된다.
처음에 보이카펠은 샤넬이 에티엔 발상과 헤어지겠다고 말하자 친구를 배신할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여자보다 더 말에 열정과 관심이 있는 에티엔 발상, 그리고 에티엔 발상의 진정성 없는 그녀와의 관계를 알고 난 뒤 서서히 맘을 열어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데 한마디로 썸을 탔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에티엔 발상과 헤어진 2년 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옷과 액세서리 , 특히 모자 제조 판매에 비중을 두었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남자가 바로 보이 Boy라고 불리는 아서 카펠!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코코 샤넬은 말했다.
과거의 신분이 묘한 그는 젊었을 때 영국 최고의 대학에 다녔지만, 그의 출생은 늘 수수께끼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은행가 Pereire(페레어)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도 코코 샤넬과도 같은 일종의 고아라는 소문을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남자지만 충분한 경제력이 갖춰진 부유한 영국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잦은 출장으로 부재 시간이 많았던 보이 카펠을 기다리던 샤넬은 다시 한번 에티엔 발상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그녀에게 파리 Boulevard Malesherbes(말제흐브) 길에 있는 방 3개짜리 집을 빌려주어 그녀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10년 파리에 본격적인 모자 부티크를 열고 싶었던 샤넬은 또 한 번 에티엔 발상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하고 그때 생각한 사람이 바로 연인이지만 자주 같이 못 있었던 보이 카펠 , 그의 도움이 본격적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1910 년 가을, 그는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21 rue Cambon 깜봉 길의 1 층에 큰 아파트를 임대하여 작업실 겸 부티끄를 열어주었다. 덕분에 코코 샤넬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고 인맥의 왕발이었던 보이 카펠 덕분에 그의 지인들은 코코샤넬의 단골 고객이 될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돕는다.
깜봉 길 부띠끄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는데, 그때 같이 살 때의 가구들은 보이 카펠과의 사랑의 상징을 잊지 않기 위해 평생 그녀와 함께 했다고 한다. 거기엔 우리나라 고 가구도 있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1913 년 노르망디 지역 도빌에 샤넬 모드 라고 불리는 다른 모자 부티크를 열게 되는데 이때 자금을 조달 한 사람 또한 바로 보이 카펠이다.
그리고 1914년 1차 세계대전중에 프랑스 북부지역인 노르망디로 피신해 있는 파리 브루주와 고객에게 처음으로 첫 의상 컬렉션을 선 보이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모든 명성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여태껏 몸을 조여서 여성미를 강조했던 라인을 과감히 무시해 버리고 새로운 실루엣 이란 타이틀로 여태껏 옷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 파격적인 의상과 함께 코코 샤넬은 긴 머리를 과감히 잘라 최초의 단발 여성으로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모든 여성들은 코코 샤넬처럼 되고 싶어 한다. 당시의 여자들은 전형적인 여성 성의 상징으로 긴 머리를 묶고 다녔다.
그렇지만 이들 사이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데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된 보이 카펠과 코코 샤넬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야 했고 장교급으로 승진한 보이 카펠은 점점 더 영국 상류층에 어울리게 되다가 1918년 10월에 귀족 집안의 디안느라는 여자에게 홀딱 빠져 결혼까지 이르며 결국 코코샤넬은 그의 내연녀로서 사랑을 이어오게 된다.
보이와의 내연관계로 고통스러워할 때 알게 된 새로운 친구 Misia Sert 미지아 세르 덕분에 그녀는 달리,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쟝 콕도 등 당대 예술적, 문화적 아방가르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나마 살 수 있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1919 년에 보이 카펠은 코코 샤넬과 파리에서 시간을 보낸 후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프랑스 남부지역인 깐느로 가는 도중 급하게 운전을 하다가 가파른 비탈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녀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고 그녀의 사랑에 대해 애도하지만, 그녀는 밝은 미래 꿈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당시 코코 샤넬은 36 세였고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오겠지만 그녀는 결심하게 된다고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의 9년간 이어온 찐 사랑이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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