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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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1.

by today paris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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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얘기하자면 여러 가지 주제가 많은 나라지만 그중 우리나라와도 가장 많은 교류가 있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프랑스 영화사를 드려다 보면 영화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긍심과 예술 사랑이 잘 반영 되어있으며 프랑스 영화의 역사 위상이 실로 대담함을 알 수 있다.

 

규모나 시스템으로 따지고 본다면 이미 상업화의 길을 쭈욱 구축해 온 헐리우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프랑스의 영화사랑은 국가적 자존심과도 맞 물려있으며 , 대부분 유럽 여러 나라들이 자리를 내어준지 오래지만 프랑스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높은 나라이다 . 1994 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는 35% 의 자국영화의 점유율로 가장 높았고 이태리는 24%, 스페인 9.3%, 영국은 3.6%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는 유럽나라중에서도 다양한 영화의 주제 선택과 제작비의 투자및 지원 , 꾸준한 관람객 입장수 및 영화 제작편수 , 수출 및 수입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나라로써 유일하게 미국 영화에 맞설 수 있다고나 할까 ?

참고로 인도 영화의 특수성을 고려해 예외로 보았다.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이 높다 보니 영화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그 구조와 함께 꾸준한 발전과 유지를 하고 있는거 같다 . 자 ... 그럼 최초의 영화 필름이 등장한 프랑스 영화의 역사를 알아보자.

프랑스 영화의 탄생과 발전

1.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리옹 지역 출신인 뤼미에르(Lumière)형제에 의해 오늘날의 영화를 탄생시키며 카메라를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켜 피사체를 촬영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현장에서 사실성이나 기록적인 사건을 포착하는 형식으로 나타나 오늘날 기록영화나 뉴스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2. 1896년 오늘날에도 프랑스 영화사의 대표하는 고몽(Gaumont) 영화사는 레옹 고몽(Léon Gaumont)이 설립하고, 샤흘르 에밀 빠떼(Charles Emile Pathé)가 빠떼(Pathé) 영화사를 설립하므로 많은 영화들을 제작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조오지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은 최초의 공상과학영화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 트릭 기법에서 특수 효과를 사용한 판타스틱 영화의 원조가 된다고 한다.

 

3. 1907-1908 년에는 역사물이나 멜로드라마를 다룬 짧고 서툰 단편영화들을 유랑극단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4. 1910-1918 년에는 아주 짧지만 같은 주제를 담은 단편 시리즈가 등장했으며 70% 이상의 영화가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영화가 하나의 매체로써 예술적 가치를 보이는 시기였다고 한다.

 

5.1918-1930 년에 는 세계 1차 대전이 프랑스 영화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되고 영화 제작 관련 사람들이 징집당하였으며 수출이 중단되자 극장을 채우기 위해 미국 영화 상영이 많아지기 시작했던 시기로 본다.

 

6. 1930-1940 년에는 프랑스 영화사로 보면 황금기로 흥행작 의 필수 조건이었던 대스타들이 탄생되었다. 사운드가 도입되어 발성영화가 나왔으며 문학적, 연극적 전통 시나리오에 힘입어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지적인 내용을 강조, 탐구했으며 미국 주요 도시에 최초의 외국어로 된 프랑스 영화가 미국 영화 시장에 수출되었다.

프랑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소규모의 몇몇 예술극장이 미국에 생겨나기도 했으며, 장 르느와르(Jean Renoir), 장 비고(Jean Vigo), 장 꼭토(Jean Cocteau)가 대표적인 선두 감독이다.

 

7. 1945-1954 년까지는 레 까이에 뒤 시네마(les Cahiers du Cinéma)라는 영화 비평지에서 침체된 영화 상황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8. 1955-1960 년에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라는 움직임으로 자유로운 영화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물결 을 뜻하는 프랑스 어로 침체에 빠져 있는 기존의 프랑스 영화에서 탈피 , 자유분방한 감수성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영상을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특히 1959-60년 사이에 데뷔한 감독들인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프랑수와 트뤼포 (Franç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에릭 로메르(Eric Rohmer)등이 대표적이며 이 혁식적인 변화는 서양미술사의 인상주의 와도 같은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다.

 

9. 1968-1980 년에는 현대적인 삶의 복잡함을 풍자한 현대적인 코미디가 쟈크 따티(Jacques Tati)에 의해 대흥행 하게 됐으며 몇몇 감독들은 현실에 담긴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루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 감독을 꼽자면 1970년대 말에 블랙유머를 다룬 베흐트랑 블리에(Bertrand Blier) 감독이다.

 

10. 1980- 1990 년에는 스타 위주로 인기를 누렸던 영화가 막을 내리기 시작하며 흥행 위주로 제작해 온 프랑스 영화에 대해 "프랑스 영화의 전통과 미국의 팝 문화 사이에 태어난 기형아와도 같다"는 혹독한 비평을 받기 시작한 시기로써 프랑스식 액션 영화를 만드는 뤽 베송(Luc Besson)은 흥행 감독으로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감독이며 유일하게 "퐁네프의 연인들"을 감독한 레오스 까락스(Léos Carax)만이 인정받게 된다.

 

11. 1990 년부터는 미국의 영화 자유교역 주의에 반발하게 되며, 정부가 재정적으로 영화 예산이나 데뷔 감독 영화를 지원하기 시작하게 되며, 텔레비전 방송국도 영화 제작에 참여하여 공동 제작을 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때부터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등장하면서 영화 배급 시스템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하고, 배급 비율과 영화 제작 대비

관람객들이 많지 않자 "문화는(영화)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1993년 인정받게 되어 연간 2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들과 대작 영화를 제작하게 되고,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국립 영화 학교 출신들의 신인 영화감독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2. 2013 년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수출국이었으며 2014 년 4 월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영화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프랑스 영화는 가장 우수한 이미지 영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유니프랑스는 프랑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상업적 매개체 기관으로 프랑스 영화의 절대적인 존재 기관이다.

 

*Unifrance (때때로 UniFrance라고도 함)는 전 세계에 프랑스 영화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조직기관으로 1901 년 법률 협회의 형태로 시작하여 1949 년에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13. 2012 년에 2 억 장의 영화 티켓이 팔렸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티켓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프랑스는 현재 입장면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화 시장이다. (미국과 인도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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