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의 거장 화가 클로드 모네의 비하인드 스토리
본문 바로가기
아트 & 문화 톡

인상파의 거장 화가 클로드 모네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today paris 2021. 12. 28.
반응형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 클로드 모네의 11가지 특징

 

클로드 모네의 양귀비, 수련뿐만 아니라 모든 그의 작품을 통해 다채롭고 화사한 색상에 감탄하게 됩니다.

인상파의 핵심 인물이자 대표적인 화가 클로드 모네는 당대의 예술에 혁명을 일으킨 화가로써

이런 그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소소한 11가지 일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어릴 때부터 화가의 기질이 보였던 모네.

클로드 모네는 한 고집하는 학생으로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노트에 친구들이나 선생님 또는 정치인의 캐리커처를 그렸다고 하며, 또한 배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도 그렸다고 하는데요...

이 맘 때쯤 인상파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미래의 유명한 화가가 될 모네를 해변으로 데려가 그의 붓놀림을 보여주고 가르치게 됩니다. 이 만남은 클로드 모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만남이 되었고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화가가 된다면 이건 외젠 부댕 덕이다''

 

 어쪄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될뻔한 모네?

클로드 모네는 주로 그의 아내였던 카미유 돈시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특히 1866년부터 그린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초상화나 ''정원의 여인들(Women in the Garden)''이라는 작품을 통해 잘 알 수 있는데요... 초상화로써는 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세 명의 여성과 한 남성을 그리게 되는데 그림 속의 한 남자가 응시하는 사람은 그의 부인 카미유 된 시외이고 이 작품은 모네가 초상화 화가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파리에서 매우 인기작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연 속 정원에 있는 사람을 그리면서 빛에 따라 움직이는 풍경의 섬세함과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빛과 물에 대한 그의 집착

빛의 놀이, 자연에 비치는 태양의 빛, 물에 반사되는 빛의 반짝임에 반한 그는 최고의 전망, 최고의 순간을 보기 위해

주저 없이 보트에 작업장을 마련하게 되고 센 강과 사랑에 빠진 그는 평생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에게 모든 장소, 시간, 계절은 새로운 그림을 탄생시켰고, 그러한 빛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

배에 아틀리에를 마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종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모네

그의 그림은 종종 같은 대상을 여러 번 그리게 되다 보니 연작이 나오게 됩니다, 빛과 물에 대한 열정 외에도 모네는 동일한 예술적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서 그리는 데 상당히 몰두하게 되는데요...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바라보는 모네의 시선은 계절, 하루 중 시간, 아침 또는 저녁 빛, 반사 또는 그림자에 따라 변동하게 되므로, 그는 기차, 바다, 눈, 성당, 심지어 수련과 같은 동일한 대상을 기반으로 일련의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그만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한 때는 힘든 삶을 살았던 모네

이미지출저: giverny.fr/ Paul Durant-Ruel

모네의 이런 재능만 평가한다면 클로드 모네는 그의 작품 덕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었겠지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모네는 친구와 가족에게서 정기적으로 돈을 빌리게 되는데 그중 숙모로부터 가장 큰 도움과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부인 카미유와 떨어져 부모와 함께 살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1870년 런던에서 미술품 딜러이자 평생 모네를 지원하게 되는 스폰서 폴 뒤렁 휴엘(Paul Durant-Ruel)의 만남을 계기로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며, 1876년에 나중에 함께 살았던 수집가 어니스트와

알리스 오쉬데 부부도 만나게 됩니다.

 

복잡한 사랑 관계!

르누아르가 그린 모네의 부인 카미유 돈시외

클로드 모네는 1870년 6월에 그가 가장 사랑했던 카미유 돈시외와 결혼하여 장 모네와 미셸 모네라는 두 아들을 두게 되지만, 1870년대 후반 수집가 부부 어니스트와 알리스 오쉬데 (Ernest와 Alice Hoschedé) 이 두 커플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을 때 그는 어니스트 오쉬데의 아내인 알리스 오쉬 데와 바람을 내연의 관계를 가지게 되고. 각자의 동반자들인  카미유와 어니스트가 죽은 후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함께 모네의 아들 2명과 앨리스의 6명의 자녀를 키우게 되고 모네의 아들 장 모네와 어니스트와 알리스의 딸인 블랑쉬 오쉬 데와 결혼을 하지만 1926년 말, 클로드 모네는 부인 알리스와 그의 아들 장이 죽은 직후 블랑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100% 그림에 몰두한 화가 , 모네

모네는 일생을 그림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는 정치라든지 사회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그림과 대상만이 그에게는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림에 몰두하기 위해 그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서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기적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의 아들, 그의 부모, 카미유, 알리스, 모두 모네의 그림 중에  남아있습니다. 종종 편지를 통해 카미유나 알리스에게 말하듯이 자연에 대한 진정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실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불행하게도 백내장을 발견하게 되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림에 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그의 시력은 더 이상

색상과 빛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게 되자 좌절하게 되기도 합니다.

 

정원에 대한 그의 열정

클로드 모네에 의해 인기를 얻은 지베르니는 40년 이상 동안 그의 집이자 상상과 창조의 장소라고 합니다.

특히 이곳에서 그는 잘 알려진 수련 시리즈를 구성하는 250점의 그림을 제작하게 된 곳으로써, 이 작품에 영감을 준 수련은 그가 1893년에 팠던 연못에서 시작됩니다. 모네의 이러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열정은 그가 사는 곳에서 느끼는 자연의 존재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그의 집 정원은 귀중한 식물과 수양 버드나무 등 일본식 정원과 프랑스식 정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네는 그림 다음으로 가장 정원 가꾸는 것에 열정이 넘쳤으며 그 덕분에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남게 됩니다.

 

모네와 르누아르, 우정 이야기

클로드 모네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1862년 Charles Gleyre의 스튜디오에서 만나게 되면서 비슷한 성향으로 급속하게 친해집니다. 이들은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고 매우 정기적으로 야외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자주 그리기도 했으며,서로의 작품의 일부가 매우 유사한 면도 있지만 두 예술가 각자 특정한 특정성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모네가 풍경의 대가인 것처럼 초상화의 대가인 르누아르는 모네와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려주게 되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모네를 위해 1872년에 신문을 읽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라는 그림인 중절모 아래로 갈색 수염을 기른 모네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신문을 읽는 모습이의 그림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모네와 예술의 역사

클로드 모네가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이유는 그의 작품이 어떠한 작품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화가들은 가능한 한 비현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했다면, 모네는 관찰한 대로 색, 빛, 모양을 재현하는 노력했습니다. 모네는 아틀리에 내부에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야외를 선호하고 고집했으며, 또 때마침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휴대용 튜브 물감과 이젤의 등장으로 모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낙선한 사람들끼리 열었던 전시회에서 모네의 ''해돋이/Soleil Levant''그림을 조롱하던 미술 평론가 Louis Leroy 가 한 말에서 나오게 되고, 이 부류의 화가들을 인상파로 분류하여 불리게 되는 계기의 작품이 모네의 작품입니다.

 

훌륭한 화가이지만 괴팍했던 모네

이미지출저: franceinter.f/ 클레망소와 모네

 

섬세하고 화사한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그다지 성격이 좋은편은 아녔다고 합니다. 지베르니 마을에서는 별로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단지 그림을 그리러 왔을 뿐이었 때지만 때로는 작품이 맘에 들지 않을 때에는 다 때려 부수기로 유명했기 때문인데요... 작품에 열중하다 보면 모네 또한 종종 분노나 낙담의 고통을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의 친구 조르주 클레망소(George Clemenceau/프랑스 정치인이자 언론인)는 모네를 "괴팍한 늙은 고슴도치"로 불렀다고 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