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의 위생과 청결에 관련된 목욕, 치약, 화장실 의자!
루이 14 세는 평생 목욕을 한 번만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고 오늘날 베르사이유 궁전은 특히 열악한 위생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다. 사실 프랑스의 중세 시대가 퇴보를 보여주는 앙시앙레짐때보다 훨씬 더 자주 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베르사이유의 궁전의 왕족들은 소문과는 달리 비위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사실 실례를 본 뒤 복도에서 자신의 체취를 감추려는 목적으로 과도하게 향수를 뿌렸던 것뿐이다.
오늘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상징 베르사이유 궁전의 위생 관련에 알아보자!
물과 청결
우리가 대중적으로 알고 있는 생각과는 달리 베르사이유 궁전은 초창기 루이 13세부터 물의 유입구가 있었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궁전이 아니라 사냥을 마치고 나서 다시 루브르 궁전까지 돌아가려면 피곤했던 루이 13세가 만든 작은 별장식 궁전이였다.
그 후 루이 14세의 뜨거운 질투심으로 만들어진 이 경이로운 궁전에 루이 14 세는 위생 시설을 포함하여 최첨단 기술의 모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궁전에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투자했으며 공원과 수많은 분수를 위한 물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용, 음식 및 목욕 시에도 사용되었으며 또한 1680~1685 년에 걸쳐 11 개의 분수대를 설치하여 지역 시민들이 "안전한"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물을 상당히 무서워했는데 ''물로 몸을 씻으면 모공이 확장되고 물이 피부 내부로 침투하여 장기를 오염시키고 질병을 전파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는 경고문 때문이라는 논문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건조한 화장실(실례 후 티슈로 뒤처리를 한다는 뜻)을 선호했으며, 루이 14 세는 알코올에 적신 향이 나는 수건으로 정기적으로 뒤처리를 했다고....
거의 의식처럼 루이 14세는 기상과 취침 전에 수건을 냉큼 대령시켰다고 한다.
또 청결에 대한 개념이 오늘날과는 다른 이 시대의 청결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로 깨끗한 외모 함께 잘 관리된 외모가 청결의 개념이었다.
단정한 차림새가 예의에 대한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에 왕과 귀족들은 하루에 5번까지 셔츠를 갈아입었다고 하며 이
사치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따라서 예복보다 더 자주 스스로를 수건으로 닦았다.
또한 구강청결에 상당히 노력을 했다는 기록으로 입에서 나는 좋은 향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이 14 세는 실제로 치약의 조상격인 수렴성 혼합물로 치아를 정기적으로 닦았다고 하는데 자단 뿌리, 사이프러스, 로즈메리 또는 머틀의 뿌리 식물로 맛을 내고 아편을 으깨서 만든 반죽에 아니스, 계피, 백리향 또는 박하 등을 향을 첨가했다고 한다.
또한 일부 귀족들은 앙리 2세의 딸이자 절세미인이었던 세비니에 부인이 딸에게 조언 한대로 담배 (소독 성분이 가득한 것으로 믿어짐) 또는 소변로 양치질을 했다. 다행히 루이 14세 양치법이 이어져 와서 천만 다행이다.
냄새나는 베르사이유 궁전 내의 복도
귀족들의 비위생과 저속함은 실제로 예외였으며 실제 콘티 공주처럼 일부 귀족들은 지나치게 청결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귀족들은 청결과는 거리가 먼 확고한 명성을 쌓기도 했다.
앙리 4세의 손자인 방돔 공작은 화장실 의자에서( 의자에 구멍이 나있어 귀족들이 실례를 하는 장소) 손님을 맞이하고,
그의 신하들은 화장실 의자를 비우고 (세척하지 않고!) 재사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동은 매우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예외인 경우이다.
또 다른 예로 그 당시 프랑스의 주교인 클레르몽 토너레가 베르사이유 예배당의 난간을 통해 "작은 실례하는 것"이 잡히면서 청소 책임자가 주교에게 즉시 경고를 보낼 정도로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었다.
또한 태양왕 루이 14세 때는 350 개의 화장실 의자를 갖추고 있었지만 매일 베르사이유의 복도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귀족들에 비해 여전히 숫자가 충분하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했던 것이 바로 궁전에서 나는 악취였다.
음식 냄새와 섞인 마구간 냄새와 같은…
목욕을 사랑했던 루이 14세는 어렸을 때부터 쾌락의 장소로 불린 목욕탕을 즐겨 찾았는데 씻겨도 주고 좋은 향수도
뿌려주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루이 14세는 냄새에 매우 민감해서 강한 향으로 심한 두통에 시달리자 1680 년, 오랜 정부였던 몬테스판 부인과의 관계가 끝날 무렵 왕은 강한 향수를 풍기는 그녀를 마지막에는 혐오했다고 한다.
루이 14 세 시대에는 욕실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지만 왕은 자주 목욕을 했으며 그는 특히 자연의 중심에 있는 센 강에서 "강탕"을 그의 생이 마감할때까지 즐겼다고 한다. 왕은 더운 여름에는 ''강탕''으로 더위를 이겨냈고 루이 14세가 방문할 때마다 그의 침실 장교와 신하들은 텐트를 쳐서 왕이 옷을 편하게 입도록 해주었다.
또한 루이 14 세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 훌륭한 욕실이 딸린 방을 만들어 정부였던 몬테스판 부인과의 밀애를 즐겼는데
이곳은 다채로운 빛깔의 대리석 장식, 화려한 프레스코화, 향기로운 물로 채워진 욕조, 거대한 거울과 기둥으로 장식된 화장 고치는 방등이 있었으며, 파리의 마를리성에도 욕실을 만든 루이 14세는사냥을 마치거나 테니스 경기를 마친 후 의사의 추천을 받아 "침실욕"을 즐겼던 곳이다.
왕과 귀족들의 목욕의 보편화
18 세기 루이15 세부터 점점 욕실을 갖추기 시작하여 루이15세는 세척용 욕조와 헹굼용 욕조까지 갖추게 되는데 방 위에 설치된 후드와 벽난로 덕분에 냉수와 온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1722 년에 베르사유로 이사한 루이 15 세는 작고 따뜻한 방에 구리로 된 욕조를 요구하였지만 결국 구리 욕조안의 물이 식지않자 몸을 담그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목욕했는....
1728 년에는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 레즈친스카 개인용 이동식 욕조가 있는 밀방을 추가했으며,베르사이유 궁전내의 모든 귀족들은 자신의 욕조를 가지고 있었으니 루이 15세가 가장 애정했던 정부 퐁파두르 부인도 방에 욕실 설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진행 과정을 통해 실제로 18 세기 후반부터 목욕이 더욱 보편화 되었고 왕족들도 정기적으로 목욕을 했다.
루이 16세때에는 강력한 향수보다는 물로 가볍게 씻은 후 섬세한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다리를 씻으면서 목욕도 즐겼다고 한다. 그녀가가 원할때마다 방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동식 욕조가 있었으며 그녀는 목에 단추가 달린 긴 플란넬 드레스를 입고 달콤한 아몬드 향이 나는 욕조안에서 핫 초콜릿 한잔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왕과 왕비가 목욕을 즐기자 귀족들은 더 이상 닦아내지 않고 너도 나도 할 것없이 호화로운 저택에 대리석과 금으로 장식된 웅장한 욕실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최첨단 기술의 거대한 욕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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