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 파리 라고!! 바로 최초의 르 봉마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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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 파리 라고!! 바로 최초의 르 봉마르쉐

by today paris 202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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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은근히 공부도 안 하는 거 같은데 고 첨단 분야에서는 5손가락 안에 드는 것도 많고, 나름 일반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파트를 차지하는 게 아무래도 명품 브랜드 사업은 빠질 수 없다.

백화점 문화를 가장 먼저 만든 나라도 프랑스라고 하니 백화점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국제적으로는 쁘렝땅이나 갤러리 라파예트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 세계에서 최초로 탄생한 백화점은 봉마르쉐

(LE BON MARCHE)이다.

첫 백화점이 르 봉 마르쉐는 1852 년에 설립되었고, 1865 년에 프렝땅 Printemps 백화점, 라 쌍마리뗑 La Samaritaine은 1870 년에 개관된다.

 

나폴 에옹 3세, 즉 제2 제국에는 파리 브르주 와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상점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여기서 봉마르쉐 이야기를 하자면 아리스티드 부시코 (Aristide Boucicaut)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출저:  Wikimedia common aristide Boucicaut

 

젊은 노르망디 출신의 그는 1829년 19살에 파리로 오게 된다.

그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작은 개인 상점들이 즐비했으며 매장 물건도 한정되어 있어 일일이 판매원에게 의뢰해야 하며 가격 또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같은 물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부른 게 값이었다. 한마디로 판매원이 손님 얼굴 보고 가격을 불렀다고 .

차차 조금씩 새로운 상점들이 생기면서 쇼윈도를 이쁘게 꾸며 고객들을 끌어 드리기 시작했고 더욱이 가격표시가 되어 있어서 고객들이 상점을 편하게 오가게 되기 시작했다.

 

파리 박길 ( rue de bac)에 위치하는 작은 생 토마스 petit saint thomas’’라는  매장에 이 젊은 청년 아리스티드 부시코가 판매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영업의 노하우를 익혔던 그는 열정과 경험으로 몇 년 사이에 폴 비도(paul videau)라는 사람과 동업으로 파리( rue de sevres) 세르브길 코너에 위치 한 곳에 상점을 내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le bon marche 르 봉마르쉐 이다.

 

출저:  Wikimedia common 

 

사업가 기질이 뛰어났던 그는 직원들에게 작은 커미션을 주어서 능률을 높여 빠른 시간 안에 재고가 생기지 않는 마케팅을 하였는데 그 덕분에 이 상점의 매출은 45만 프랑에서 몇 년 사이에 700만 프랑으로 거의 15배의 매출이 급등한다.

 

그의 열정에 겁을 먹은 동업자 폴 비도는 본인의 이익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동업을 포기하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시코의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백화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철도의 발달은 섬유 원료의 빠른 배송과 재봉틀 개발에 명백한 영향을 미쳤고, 운송이 더 쉽고 저렴해지자  이러한 발전의 혜택을 받기 위해 새로운 구조를 필요로 한 부시코는 여태까지 팔아온 옷이나 섬유만이 아닌 다른 상품을 들이고자한다.

 

19 세기 중반 파리에서는 오래된 중세 마차길을 철거하여 큰 공간을 살려 산업 시대의 맞는 새로운 건축 기술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시대이다.

백화점의 선구자이자 발명가인 부시코는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에게 1869 년 매장 확장을 의뢰하게 되는데 대형 퇴창, 다채로운 채광창과 커다란 돔, 철제 사용으로 이 새로운 매장은 밝고 확 트인 합리적인 내부 공간을 통해 상품이 더 잘 보이고 고객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1867년 레옹 에듀 Léon Édoux 가 선보인 승강기를 도입하기를 원했는데 최초의 승강기는 그 당시 경제 업체에서 먼저 1969년도에 도입했지만 그는 매장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여자 직원들을 위해 승강기를 도입했다고 한다.

 

란제리, 실내용품, 장난감, 문구제품, 식기용품 기타 등등 모든 걸 봉마르쉐 안에서 할 수 있게 되므로 눈부신 성장과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 더 나아가서 영업 쪽으로 새로운 형태의 양식으로 흰색 종이로 된 우편 주문 광고와 계절에 상관없이 고객에게 무려 배송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그의 가장 확실한 슬로건이자 지금도 프랑스 어디에서도 쉽게 접하는 슬로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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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멀리서 오는 고객에게는 일부러 부시코 공원을 거쳐 아르데코 건축물을 지나게 했는데 이 걸어가는 동안 거대한 봉마쉐 상점을 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또한 이 거대한 매장을 운영하려면 많은 직원과 두 번째 부서 관리 많은 영업사원들이 필요했으며 특히 여자 판매직원들은 주로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매장 꼭대기 다락방을 제공하고 식사 가지 제공했다.

부시코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일하면서 지치지 않게 현명한 부시코 부인은 그 당시 16시간의 노동 시간을 12시간으로 줄이고, 의료보험이라든지 퇴직연금 등을 월급에 포함해 주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이런 복지혜택에 매우 만족스러워하게 되는데 당시의 이런 상황을 잘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에밀 졸라가 쓴 bonheur des dames 여인들의 행복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인들의 천국 에 기록되어있다.

 

그 당시 에밀 졸라는 진정한 사회 현상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어서 몇 달 동안 봉마르쉐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앙케트식 조사를 하는 동안 많은 흥미와 관심이 생겨 책을 쓰게 되었다고, 당시 에밀 졸라는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훌륭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이기도 했다.

 

 

여인들의 천국과 그 홍보 포스터 출저 : wikipedia et BNF

 

이렇게 직원들의 복지에 힘을 쓴 봉마르쉐의 매출액은 12 년 동안 44 배가되었다. 당시 Boucicaut는 2,000만프랑의 사장이었다. 대기업 수준이었다.

 

이 시대의 프랑스 사람들은 시대정신에 맞춰 자유주의와 가톨릭사회의 원칙에 모두 영향을 게 되는데, 본인이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교훈으로 직원들을 잘 먹이고 수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능률을 올렸으며 이 일반 규정 요약에 표시된 대로1894 년 봉마르쉐는 직원을 우선시하는우수회사로 누구나 선호하는 대상이었다고한다.

 

백화점은 제2제국이 몰락한후에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발전해 왔으며, 그 시대의 가장 큰 상업 혁신 중 하나이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1960년 전후 대도시 계획자들에 의해 신개념의 쇼핑센터,쇼핑몰 이 등장함으로써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분산되기시작했다.

 

1984년에 이 백화점은 프랑스 경제 기둥이라 불리는 2개의 그룹 중에하나이면서 루이뷔통 이과 많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LVMH 그룹으로 넘어간다.

 

프랑어로 봉마르쉐 는 합리적인 저렴한, 착한 가격이란 뜻이지만 오늘날 이 봉마르쉐 백화점은 파리 좌안 부촌에 위치하면서 브르주아 파리지앙의 취향을 가장 잘 맞춘 백화점으로 탈 바뀜하게 된다.

 

 

 오늘날의 le bon marche   출저: Florian plag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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