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카페 테라스 카페의 등장 유래
카페에서 비롯되어 나오게 되는 테라스의 첫 등장은 17세기로 당시 루이 14세는 전 샤흘르 5세가 파리에 세운 성벽을 철거하고 그곳에 나무를 심기로 결정하게 되면서 현재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작하여 리실리외 디드로 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성벽의 산책길"라고 지칭했다. 지형상 그당시 살짝 언덕을 이루었던 이곳은 도시가 내려다 보여 전망을 좋았으며 그 느낌이 꼭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느낌이었다고 해서 그 후 산책로를 따라 건물주인들은 아름다운 뷰를 제공할 수 있는 건물 문 앞을 식당과 카페 상인들에게 임대하면서 노천카페 즉 테라스 카페가 등장하게 된다.
르 프로코프 (Le Procope)
카페 문학과 지성이 넘치는 지구인 파리 6구 오데옹에 1686년에 커피를 팔기 위해 문을 연 최초의 파리 카페가 바로 "Café le procope"로 335년 동안 존재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다.
이 카페는 335년전 한 이태리인에 의해 파리 센 강 좌안에 최초의 카페를 열어 운영하면서 파리지앙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태리식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 달콤 시원한 아이스크림에 반한 파리지앙들에 의해 금세 유명세를 타고 지리적으로 프랑스 전통 연극 공연장과 가깝게 위치해 연극배우들을 비롯하여 극작가, 작가, 철학 가등 루소, 볼테르, 당통, 마라, 로베스 피에르와 문호가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 등 지성인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세월과 함께 나폴레옹도 젊은시절 즐겨 찾았던 곳으로 한때 커피값을 지불 못하게 되자 그가 애용하던 모자를 담보로 주었고 다고... 지금도 그 나폴레옹 모자가 진열되어있다.
이렇게 르 프로코프는 커피와 함께 자연스레 지성인들이 만남의 장소였으며, 프랑스 대혁명시에는 ''혁명의 대학''또는 ''파리의 진정한 신문''이란 명칭이 생길 정도로 혁명단의 아지트로 사용, 자코뱅 당원들의 자유의 상징인 프리지어 (붉은 두건)를 탄생시킨 장소이기도 하다.
카페 르 프로코프는 절대군주정체에서부터 프랑스 대혁명까지 역사적인 흔적을 간직한 카페이며 18세기 문학 카페 중 가장 대표적인 카페이다.
오늘날에는 내부는 총 3층구조로 여러 유명인의 이름을 붙어 홀이 나눠져 있으며 단골들이 남긴 친필이나 물품 등을 전시 장식하고 있다. 또한 18세기 셰프의 레시피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로 장시간 영업을 못하게 되자 공사 중이다.
참고로 지인들이 왔을때 가끔 가는 곳으로 coque vin (꼬끄뱅)이 유명하며 해산물음식도 나쁘지 않다.
선택받은 파리 6구 생제르망 데프레와 오데옹
이 지구는 18 세기부터 발자크, 모네, 마네 심지어 화가 들라 크루아를 포함한 작가와 화가들을 매료시켰기 시작했으며 이 장소의 문학적 소명은 20 세기에 파리 주요 출판사 및 서점 등이 자리잡음과 동시에 극장이 또한 생성되면서 오데옹, 생제르망 지구는 배우와 지성인들에게는 당시 모든 분야의 유행을 활발하게 교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중에서도 생제르망 대로의 "카페 드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는 1885년과 1887년에 각각 문을 열어 쌍벽을 이루면서문학,철학,예술의 향기가 있는 만남의 장소로써 발레리, 릴케, 장 콕토, 오스카 와일드, 막스 에른스트, 피카소, 브라크, 지드, 생텍쥐페리, 헤밍웨이, 카뮈, 말로, 바르트 등 많은 문인과 화가, 철학가들에게 담론의 장소이자 시몬느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그들의 사랑과 철학을 나눈 장소이다.
레 두 마고 café les deux magots
지금 파리 6구에 위치한 1885 년에 문을 연 레 두 마고는 문학계의 많은 지성인들이 활동했던 곳이며 또한 가난했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했던 곳이다.
초현실주의란? 1920~1960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진 문예/예술 사조로 정신분석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고 지향하는 주의로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로이트,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 장 콕도 ,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등
1813년에 설립된 이곳은 처음에는 중국산 실크를 판매하던 천 가게였다가 1884년에 와인을 좋아했던 와인 상인이 구입을 하면서 실내에 장식된 큰 2개의 조각상을 보고 이 ''Les Deux Magots’’라는 이름을 부치게 되는데 2개의 ''동양식 도자기 인형''이란 뜻이다. 한때 경제 위기로 닫을 예정이었으나 한 경영인이 1915년에 인수하여 복원공사와 함께 카페 레 드 마고 ''café Les Deux Magots''로 카페라는 단어를 넣으면서 오늘날까지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 카페는 1933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문학계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프랑스 소설 문학상''을 88년째 꾸준히 수여하고 있으며, ''제2의 성''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시몬느 보부아르와 쟝 폴 샤르트르가 글을 쓰기 위해 자주 찾은 곳이다.
당시 대표적인 브레히트, 생텍쥐뻬리, 장 지로두, 제임스 조이스 등 많은 문호가들과 19세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들라 크루아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세기를 거쳐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으며, 특히 헤밍웨이가 1920년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책 속에서도 이 카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찰 만큼 헤밍웨이 또한 카페 레 드 마고의 단골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여기는 핫 초콜릿 티가 유명하고 엄청 찐하고 맛있다!
카페 드 플로르 café de Flore
좌파 지식인의 상징적인 장소인 ''카페 드 플로르''는 항상 진보적인 리셉션 장소가 아니었다.
1887 년에 설립된 이곳은 극단 민족주의 운동인 "악싯옹 프랑세즈/극우파"의 위대한 인물을 처음 환영했던 곳이었으나 1920 년대에 이 카페에 창의적인 열정을 불어넣은 것은 초현실주의 물결이었던 기욤 아폴리네르, 쟈크 프레베르, 보리스 비방 등 테이블에서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쓴 글에 앙드레 브르통과 루이 아르 공 사이의 초현실주의 대한 의견이 교환했던 곳으로 시작하여 시몬느 보부와 르와 쟝폴 샤르트르는 ''카페 드 플로르''에 가장 유명한 단골이 되는데 추위를 많이 탔던 장 폴 샤르트르가 레 두 마고에서 좀 더 난방이 잘되어있는 이 카페로 갈아탄 것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며 시몬느 보부아르와 쟝 폴 샤르트르 사이의 철학적 또는 낭만적인 토론을 나누었던 곳이다.
이곳은 1885 년에서 1887 년 사이에 문을 열었으며, 그 이름이 꽃과 정원의 고대 여신인 플로르에서 나왔다는 것과 카페 레 두 마고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진 내용이 별로 없다.
이 카페의 주인인 폴 부활에 따르면 쟝 폴 사르트르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놓고, 잔을 채우는 법 없이 아침부터 밤중까지 앉아 열두 시간을 버티는 놀라운 괴력을 보여 준, 가장 지독한 손님이었다''라고 말할 정도......
그래도 이러한 문인과 예술가들로 인해 생제르망 대로 가의 쌍맥을 이루는 이 두 카페는 오늘날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카페가 되었으며, 20 세기 프랑스 지성인들을 위한 "문학적, 철학적, 예술적 카페"였다.
이 두 카페에 같은 작가, 화가, 철학자,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들이 넓은 테라스에 있는 고리버들 의자를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다.
시몬느 보부와 르의 연인이자 남편인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이 되고도 수상 거부를 했던 장 폴 샤르트르의 명언 한 마디..
인생은 B(Birth)에서 D(Death) 사이의 C( Choi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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