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가 존재하지 않은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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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가 존재하지 않은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by today paris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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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가 없었던 18세기에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프랑스혁명(1789)을 겪었던 시대에는 프랑스인들은 이미 화장지를 사용했을까?

수돗물이 없는 아파트나 다락방에서 살았을 때 어떻게 실례를 해결했을까?

상당히 사소한 질문이지만 당시 파리지앙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프랑스는 한반도의 2,5배의 크기로 101개의 도시가 있는데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는 도시중에서도 역사를 따지고 올라가다 보면 2600년의 역사로 가장 오래된 도시로써 지금의 파리 모습은 19세기 초 도시 계획 때 만들어진 모습을 최대한 21세기에 맞추어 현대화시킨 것뿐이다.

 

그럼 18세기에는 설마 화장지가 있었을까? 설마....

책 종이가 더 낫지 않을까?

 

놀랍게도 오늘날 알려진 화장지는 20 세기 초반까지 실제로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19 세기에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가 신문을 사용하여 닦았고, 20 세기 초에는 현재 화장지의 조상급인 버블 랩 로프(뽁뽁이처럼 생긴 )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17세기에는 부자들은 때때로 천, 리넨 또는 벨벳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편의를 위해 미리 잘라낸 오래된 편지나 책 종이에 만족했다고 한다.(프랑스의 인쇄를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예를 들어, 루브르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전, 수행된 발굴 작업에서는 궁전의 오래된 화장실에서 수십 개의 왁스실과 책사 본을 찾아냈다는 예는 책종이가 화장지 대용임을 잘 말해준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당시 유명한 작가)가 서명 한 책 종이를 위생 수준에서 화장지로 대처해 사용했는데 그 당시 종이는 귀중한 제품이므로 일반적으로 같은 종이여러 번 재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당시의 화장지가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니... 지금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골동품인 것을...

 

그럼 그 당시 문학적으로 걸작인 책을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외에 그 당시 옛 프랑스인들은 실제로 집에서는 어떻게 자연적 현상을 해결시켰을까?

 

흠흠... 글쎄… 18세기 말까지 하수도가 등장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집에 아직 화장실 없었던 도시이므로 다른 방도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요강 또는 화장실 의자 같은 것(귀족이나 부르주아용)에 실례를 한 후 내용물을 거리로 던졌다고 한다. 내용물은 이른 아침이나 하루가 끝날 때쯤 하루에 2번 거리에 버릴 수 있었으며, 높은 곳에 살면서 게으른 사람은 창 밖으로 버렸다고 한다. 올랄라!!!

 

 

이미지 출저 :wikipedia.fr 베르싸이 궁전에 소장하고 있는 마담 퐁파두르 화장실 의자.

 

그래서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창밖으로 던지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파라솔이 등장하게 되고, 악취를 희석하기 위해 향수가 개발되고 남자들의 중절모가 나온 이유도 다 이 오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루에 두 번 오물이 버려짐으로써 거리에 축적된 오물을 다시 새로운 오물로 제거하는 방식이었고, 이 오물들은 주로 건축용 잔해, 말똥, 물론 파리지앙의 배설물과 가정 쓰레기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1780 년에 파리지앙 70만 명이 매일 750m3의 오물을 생산했으며, 이 오물은 파리의 관문에 설치된 구덩이에 최종적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이 결과를 보고 1783 년에 출판된 Tableau de Paris, Tome VII(파리 게시판 7권)에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인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18 세기에 공공 화장실의 미흡함에 대해 언급하면서 프랑스 옛 조상들이 얼마나 자주 그들의 자연현상을 충족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거의 몰상식에 가까운 야만인의 파리라고 표현했다.

 

갑작스럽게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에는 무작위로 길에 있는 집을 두들겨야 했는데 그 당시 파리에는 공개적으로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게 쉽지 않으므로 급한 사람들은 당시 세느강

주변으로 달려가 유일한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2센트 (그 당시 가격)을 지불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골목이나 나무가 우거진 구석에서 실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미지출저: filpboard.com 튈레리 정원의 Politiques de la Petite Provence의 기사 읽기                  [sic] : [dessin] / f. huot del. © Gallica / BNF

 

 

지금도 파리는 평균 200살이 된 오래된 건물을 최대한 보존한 형태에서 21세기에 맞춰 현대화시켰고, 아직도 화장실이 상당히 불편한 편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외부에 있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을 경우 카페에 들려 돈을 내고 사용하거나 커피를 한 잔 소비하고 사용하는 게 일상적이다. 

 

건물상의 이유도 있지만 굳이 화장실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오물은 하수도를 지나 하수처리장에서 최대한 걸러내어 나름 소독된 맑은 물을 만들어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친환경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나름 일찍이 하수구가 잘 발달되어있는 파리는 우리나라 정부기관에서도 많이 방문하는 곳 중에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가 당연히 사용하고 있는 화장지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중반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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