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송의 진정한 아이콘 에디트 피아프와 그녀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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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의 진정한 아이콘 에디트 피아프와 그녀의 러브 스토리

by today paris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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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 에디트 피아프

이미지 출저 :Wikipedia.org

1963년 10월10일 ,에디프 피아프는 격동적인 삶을 살다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5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샹송의 진정한 아이콘이인 에디트 피아프의 애절한 노래는 지금도 우리의 맘에 파동을 울린다.

 

얼마 전 그녀가 사망한 지 57년이 되었다는 뉴스를 일고 프랑스를 대표한 팜므파탈 에디트 피아프릐 러브 스토리 도한 그녀의 노래 못지않게 애절하다. 인생에서 큰 불운이 많았던 피아프는 운 좋게도 때때로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녀이 존재감을 세워 준 연인들이 었고 그녀는 그런 연인들에게 감사해 했다.

 

권투 선수 마르셀 세르당에 대한 그녕의 사랑이 아마도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남아 있다면, 다른 연인들은 그의 유명한 곡 중의 하나인 ''la mome 어린아이''의 노래 가사처럼 피아프는 사랑이 필요했다.

 

sans amour on n'est rien du tout /사랑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를렌느 디트리히 Marlène Dietrich???

 

이미지  출저 :Wikipedia.org

아주 드물게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피아프와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각별히 친하다 보니 그녀들의 우정은 선을 넘어 어쩜 사랑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으며 마를렌 디트리히가 사망하던 날, 이 여배우의 지인들은 심지어 그녀의

침대 옆 탁자 서랍 안에서 피아프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종이 한 장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한다.

 

각자 강한 성격을 가진 이 두 여성의 깊은 우정을 넘어선 사랑으로 인한 의문의 두 사람의 관계는 그 누구도 확실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사람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이브 몽땅 Yves Montand

 

1940년 가수로써 유명해진 피아프는 본인의 공연의 보조로 등장한 갈색머리에 훤칠한 키를 가진 젊은 이브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그녀를 보조하는 선후배 관계로 지내다가 1944년부터 1946년까지 2년 동안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발전한다.

 

그러나 같이 출연했던 영화 '밤의 문 les porte de la nuit 를 계기로 피아프는 이브에게 이별을 고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이브 몽땅이 직접 불러 너무나도 유명해진 고엽"은 쟈크 프레베르 시에 헝가리 작곡가가 곡을 붙여 세계적으로 리메이크되면서 명곡으로 남게 되는데 재즈 음악의 표본으로 인정받은 노래이다.이 덕분에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 잡은 이브 몽땅은 훗날 시몬 시뇨레 부인을 두고 메릴린 먼로와도 썸을..

 

이브는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랑에 빠졌을 때 놀랍도록 노래를 잘 불렀고 헤어졌을 때 놀랍도록 훌륭했다.그녀는 멋지지만 매우 잔인한

캐릭터였다고 그는 그녀와의 이별에서 벗어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폴 뫼리스 Paul Meurisse

 

피아프는 파리의 연극 공연장에서 장 콕토의 연극을 위해 고용되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 당시 배우였던 폴 뫼리스와 눈이 맞아 아주 짧게 사랑하게 된다.

후에 폴 뫼리스는 "피아프는 가수로써는 천재적인 가수였지만 배우로서는 자격미달이었다 라고 비아냥거리는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뒤끝이 나쁜 남자인 거 같다.

 

 

쟝 루이 죠베 르 Jean-Louis Jaubert

 

1946년 피아프의 인생에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는데 레 콩파뇽 들 라 샹송 이라는 그룹의 창립자인 쟝 루이는 파리에서 열린 어느 한 파티에서 피아프를 만나게 된다.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 콜라보로 발표했던 곡 Les Trois Cloches 3개의 종은 성공적으로 미국까지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사랑에 빠진 피아프는 그와 결혼하고 싶어 했으나 쟝 루이는 종교의 차이로 결혼을 거절하게 된다.

 

"당신은 절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맹세한 것 같다. 나는 너무 슬퍼서 밤을 지새우며 울었다."라고 피아프가 그에게 보낸 편지 내용으로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마르셀 세르단 Marcel Cerdan

 

피아프의 삶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랑을 꼽는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마르셀 세르단이다.

 

실제 그들의 첫  만남은 1946 년 7 월 7 일 클럽 오브 파이브 (Club of Five)에서 있었지만, 마르셀은 이미 결혼을 해서

세 자녀의 아버지였으므로 그 후 1년 동안은 친구와 연인 사이 그 중간쯤 되는 사이였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커지자 마르셀은 피아프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기로 결정하고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 파리 근처 블로뉴 지역에 저택까지 구입하여 장밋빛 인생을 꿈꾸었으나..

1949 년 10 월 27 일, 그는 뉴욕에 남아 있던 사랑하는 사람 피아프와 합류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실종으로 그녀는 슬픔을 견디기엔 노래밖에 없었다.

 

그와의 사랑을 회상하게 된 곡이 사랑의 찬가이다.

 

에디 콘스탄틴 Eddie Constantine

 

이미지 출저 : flickr

마르셀 사망 후 그녀의 옆을 지켜준 사람이 바로 미국 배우 에디였으며 피아프는 한동안 그의 품에서 다시 행복을 찾는다.공연장에서 같이 공연도 하며 사랑을 키워갔다고 생각하면서 피아프는 결혼을 꿈꾸지만 결국 그에게 결혼을 약속한 다른 연인이 있는 관계로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야 했다.

 

루이 제라 르당 Louis Gérardin

 

에디 콘스탄틴과의 일시적인 관계가 끝날 무렵, 피아프는 당시 떠오르는 프랑스 젊은 사이클링 선수에게 끌리게 되어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결국 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리를 두게 되고 거기에 슬픔에 잠긴 피아프는

그의 맘을 바꾸고자 편지 공세를 펴지만 결국 역효과로 그의 맘을 돌리는 데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허무하게 두 사람의 관계는 정리된다.

 

자크 필스 Jacques Pills

 

이미지 출저 : Flickr CC BY-NC-SA 2.0

사랑에 실망하지만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피아프는 1952년에 프랑스 가수 쟈크를 만나면서 다시 삶의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문의 소문이 도는 절친(?) 마를렌느 디트리히의 증인 아래 두사람은 결혼을 하게되고 자크는 그녀를 위한 곡도 쓰면서 잉꼬부부처럼 살지만 4년 결혼 생활을 뒤로 하고 결국은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조르주무스타키 Georges Moustaki

 

사랑에 지치지 않은 피아프는 1958 년 당시 23 세의 젊은 화가였던 조르주를 만나게 되고 피아프에게 있어서 나이 차이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피아프는 조르주의 인생 커리어에 큰 조력자였다.

조르주는 그녀를 위해 Milord라는 글을 쓰고 피아프는 노래를 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 피아프 관련한 가장 영향력 있는 곡 중에 하나라고 한다.

 

"피아프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옷 입는 법, 먹는 법... 그녀와 함께, 매 순간이 강렬했다"라고 조르주 무스타키는 말했다.

 

샤를르 아즈나부르 Charles Aznavour

 

피아프의 인생의 연인들 중에 샤를르는 그녀에게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연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연인관계가 아니었다면 영원한 솔 메이트였을 것이다.

그녀의 비서이기도 했던 샤를르는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자,

 

‘’나는 그녀와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큰 유대감을 가졌으며 그녀는 나의 콧대를 꺾어주었는데 그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

 

더글라스 데이비스 Douglas Davis

 

또 다른 고통스러운 이별 후, 피아프는 더글라스라는 젊은 이탈리아 화가의 품에 그녀의 슬픔을 달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녀는 많은 건강 문제로 조르주 워싱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 이태리 청년이 그녀에게 매우 관심을 보이고 그녀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회복될 때까지 매일 그녀를 방문하는 것에 감동하여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펠릭스 마텐 Félix Marten

 

1958 년 피아프는 펠릭스와 올림피아 공연장에서 공연을 같이 하게 된다.

펠릭스는 막 뜨기 시작한 신인 배우인데 마르셀이 사망한 지 10 년 후이다.

43 세의 피아프는 이 키가 크고 진한 갈색 머리의 펠릭스와 8개월간 짧고 굵은 사랑을 하면서 연인으로 지낸다.

 

테오 사라 포 Théo Sarapo

 

 

이미지 출저 : wikimedia commons

그는 피아프의 마지막 남자이다.그녀와 만났을 당시 피아프 보다 20 살 어린 테오는 그녀의 마지막 남편이기도 하다.

피아프는 그를 진정한 피그 말 리옹 입장에서 떼오를 사랑했으며 피아프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테오를 무대 위로 초대할 정도로 그에 대한 주저함이 없었다.

 

1963 년 피아프가 사망한 후 황폐해진 테오는 함께 살았던 아파트에서 1 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삶의 큰 사랑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고 한다.

 

143 센티 작은 체구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았던 그녀의 노래가 왜 이리 애절한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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