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계셨나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날 132명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비참한 결말을 위한 비극적인 시작을 예고한 듯...
미래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의 치명적인 불꽃놀이!
루이 오거스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결혼식 당시 프랑스 나이로 16세와 14세였습니다.
미래의 프랑스 왕과 독일 황후의 딸이 결혼함으로써 두 나라의 화합과 함께 이를 축하하기 위해
크고 작은 축제가 파리와 베르사유에서 며칠에 걸쳐 열리게 되었습니다.
축하하기 위해 계획된 축제는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예정되었으나 결국에는 커다란 재앙으로 변하게 됩니다.
1770년 5월 30일 수요일 저녁, 루이 오귀스트 도팽(루이 16세)과 오스트리아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그 당시 파리에서는 센 강 근처에서 불꽃 쇼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튈르리 궁전에 인접한 루이 15세 광장(현 콩코드)에 모이기 시작했고, 근처에서 새로운 마들렌 교회의 건설 현장을 따라 대로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열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울 불꽃놀이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으며 거의 3,400만 명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모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샹젤리제의 숲 속 산책로와 대로변의 상점으로 이어지는 루아얄 거리까지의 넘쳐나는 수많은 군중들을 당시의 유명한 연대기 작가인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이 엄청난 군중을 표현하기를 "그날 아마도 집에 남았는 사람은 파리 시민의 3분의 1 정도도 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인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보통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놀이는 왕궁을 위해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베르사유에서 가장 자주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생소하며 아름다운 불꽃이 처음으로 발사되었을 때 시민들은 거의 감동의 도가니로
빛나고, 반짝거리고, 마지막 꽃다발이 될 때까지 파리의 하늘에서 터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서 결함이 있는 화전(불꽃놀이 행사 도중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에 매단) 땅에 떨어지면서 불바다가 되는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루이-세바스티앙 메르시에(Louis-Sébastien Mercier)는 "많은 시민들이 피하다가 서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잔인한 장면은 죽음의 공포를 더했는데 아들의 발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옆구리를 짓밟는다든지 아버지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들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고를 " 대질식 사고''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사고의 결국 13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는 비극과 함께 시신은 재앙의 현장과 가능한 한 가깝게, 당시 마들렌과 매우 가까운 마을인 Ville-L'Evêque의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그곳에서 23년 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해도 묻힐 예정이며 둘 다 1793년 1월 21일과 10월 16일 루이 15세 광장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렇듯 그들의 결혼식은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왠지 불운을 암시한 듯한 이 사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관계의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못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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