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치아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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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치아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by today paris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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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진료의 역사에 관한 10 가지 놀라운 사실

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기술을 사용하여 치과 치료 및 치과 전문직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비교적 최근의 치료 과학이고 오래전에는 지금처럼 위생적이고 발전한 치료로부터 혜택을 당연히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옛사람들의 치아 관리에 관하여 10 가지 놀라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조금 비위가 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봅시다.

1. 로마인은 소변을 구강 세정제로 사용했습니다.

실제 구강 세정제로 소변을 사용하는 것은 흔했고 로마인들에게는 완전히 정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통행인이 소변을 보고 나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화분 같은 것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실, 소변의 암모니아는 치아에 효과가 있었고 또한 치아를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2. 치과 의사는 실제 치아로 의치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의치는 인공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몇 세기 전에는 금, 은 또는 구리로 만든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의 실제 치아가 사용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루카에서 발견된 보철은 14 세기에서 17 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의치는 1400 년부터 일반화되었습니다.

옛치약./이미지출저: dentaire365 

 

3. 치약은 기원전 5000 년경에 발명되었습니다.

최초의 칫솔은 기원전 3,500 ~ 3,000 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치약은 훨씬 오래전으로 로마인, 그리스인, 중국인 및 인도인이 먼저 사용했다고 합니다. 치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불에 탄 달걀 껍데기와 불에 탄 소 발굽 재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인들은 나중에 목탄, 나무껍질 및 향료를 추가해서 사용했으며 훗날 1945 년까지 치약에 비누가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미지출저:Retronews.fr

 

4. 옛 이발사는 치과 의사였습니다.

몇 세기 전까지 만해도 미용사는 미용실에서 치아 제거까지 허용되어 투잡을 했습니다. 장비뿐만 아니라 자격증도 공유되었는데 그 당시의 의사들은 위생 지식이 거의 없는 미용사에게 몇 가지 작업을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충치가 발견되었을 때, 그들은 뽑기 전에 치료 대신 썩은 치아를 무조건 제거했습니다.

 

5. 수천 년 동안 전체 문명은 양치질을 하지않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양치질의 이유를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양치질이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곳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치아를 보존하기 위해 자연식품과 가공되지 않은 식품만 있는 식단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화학 물질 또는 인공 방부제가 없어서 영양소와 비타민이 훨씬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치아 속의 박테리아와 음식 조각을 제거하는데도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6. 일부 봉한 치아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19 세기 펜실베니아 치과 의사가 진료 경력을 쌓는 동안 봉한이가 3차례 터진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1817 년에 한 환자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때운(봉한) 치아가 터졌다고 말했으며 치아가 갈라지고 터지기 몇 시간 전에 끔찍한 치통을 겪었야만 했습니다. 1871 년에 더 극단적인 경우는 봉 한치 아가 터져 쓰러져서 며칠 동안 귀머거리가 되었던 여성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봉한 치아의 터짐은 1920 년대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납, 은, 주석이 포함된 합금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치과 의사는 치아 내부에 전기 화학 전지를 만들어 반응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문제의 치아를 진짜 작은 배터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를 들어 흡연자가 담배를 피웠을 때 내부에 수소가 반응하면서 폭발? 터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7. 썩은 검은 이빨은 영국의 패션이었다

패션은 그 시대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튜더 왕가 시기 영국에서 설탕은 상당히 귀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치품이었는데 그들은 채소, 과일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약에도 설탕을 첨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자베스 여왕뿐만 아니라 치아우식증이 빠르게 퍼지게 되자 부자들 사이에서 검은 이빨이 흔해져 그 당시 사회의 시선으로는 지위의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치아를 검게 칠했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저: pinterest.com

8. 일본에서 좋게 인식된 검은이

영국과는 또 다른 이유로 이번에는 일본에서도 한때 검은 치아가 유행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설탕이 이유가 아니라 일본과 주변의 아시아인들은 특정 염료로 치아를 검게 했습니다. 오하 구로라는 염료로 특히 8 ~ 12 세기에 일본 귀족들은 얼굴을 하얗게 칠했는데 누런 치아가 눈에 거슬리자 미를 추구하기 위해 일본 귀족들은 치아를 검게 칠하기 시작했고 사무라이 또한 검은 치아에 익숙해져 주인에게 충성을 상징하기 위해 검게 칠하기도 했습니다.

 

9. 치통을 치료하기 위해 죽은쥐를 사용하였습니다.

치통은 어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증 중 하나입니다. 이런 치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대 이집트의 의사들은 치통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죽은 쥐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혼합했습니다. 이 치료법은 아마도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고 있지만, 환자에게 또 다른 질병을 발생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0. 외상이 심했던 치과 도구.

치과에서 사용되었던 옛 치과 치료 도구는 많은 질문을 제기하게 되는데 보통 “치료”후에 환자들은 종종 잇몸에서 심한 출혈을 겪었고, 주변 치아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턱이 손상되기도 했습니다. 1300 년대에 발명된 몇 가지 모델을 비롯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 더 다양해졌지만 손상은 여전히 ​​존재했으며 환자는 의사의 허벅지 (미용사) 사이에 머리를 두고 있었고 미용사는 치아가 뽑힐 때까지 이빨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조심스러워도 부상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썩은 치아를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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