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파리지앙들의 상차림은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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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파리지앙들의 상차림은 과연 ?

by today paris 2021.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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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과격하고 미숙한 시기로 간주되는 중세 시대는 과연 어떤 요리를 위주로 먹었을까?

 

중세 때 식사란 귀족들 사이에서는 맛의 음미가 중요했으며 단순한 끼니를 때우는 역할을 넘어 즐거움이라는 개념을

추구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요리법이나 식사 관습에 대한 개념은 거리가 멀었다.

 

만약 테이블의 아트나 요리의 순서가 이미 존재했다면 이 특권은 귀족과 부르주아들에게 제안되었으며, 벌써 식사 접시에서부터 신분 차별이 존재하던 터이다.

 

권력 투쟁과 종교적 통제, 잘 정의된 사회 계층 구조에 의해 지배된 중세 사회는 오늘날과는 훨씬 다른 방식으로 음식을 보았으며 음식의 자질과 미덕은 자연 요소를 바탕으로 고려되었는데 신이 계신 하늘에 가까운 식자재를 특히 신성하고 귀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대조적으로 땅 아래의 식자재는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4 세기에 파리의 요리는 질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급 요리는 궁전과 귀족의 저택을 위해 한정되어 있었고, 일반 서민들에게 음식이란 매일 일하기 위한 충분한 힘과 에너지를 찾기 위한 보충이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미래와 음식을 즐기는 여유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부터 그들이 즐겨 먹었던 식자재를 알아가 보자!

이미지출저: les voyage du temps

빵과 계란 

 

중세의 주된 식자재로 사회 계급에 상관없이 빵은 모든 식사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이 빵에서도 신분 차별이 존재했는데

귀족과 브르주아들은 요즘 빵처럼 부드러운 밀로 만든 질 좋은 흰 빵을 먹었으며 가난한 서민들은 보리빵이나 밀과 호밀의 혼합된 딱딱한 빵을 먹었으며 부드럽게 먹기 위해 고기 또는 야채에 문지르거나 국물이나 우유 또는 고기 육즙에 담가 먹었다.

또한 귀족이나 브르주아들 사이에서 빵의 사용은 매우 달랐는데 두꺼운 조각으로 자르고 접시 대신 빵을 사용했다.

접시를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중세 기독교에서는 음식을 그릇에 담는 것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성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접시 대신 빵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접시가 보급되기 시작한 건 15~16세기부터이다.

 

고기를 두껍게 썬 빵 위에 올려놓으면 육즙이 스며들어 눅눅해졌을 때 부드러워졌고 고기를 다 먹게 되면 이 육즙이 베인 빵을 먹거나 본인들이 먹기 싫으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개에게 주었다고 한다.

 

식사 시에는 손가락과 칼을 사용하여 식사를 하였으며 포크는 16세기에, 지금처럼 포크, 나이프를 갖추어 먹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식탁 위엔 늘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이든 큰 볼이 마련되어있었다고 하며, 국물을 뜰 정도의 국자만 존재했다.

 

성직자들은 음식은 신의 은혜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져도 되는 것은 인간의 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으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계란은 또한 모든 끼니에 올려지는데 그대로 먹거나 소스를 곁들여 먹거나, 테린(계란을 으깬 서 굳힘) 및 수프에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식자재였다.

 

고기와 야채

 

야채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늘 즉 천국에 가까운 고급 요리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 당근과 마늘, 양파, 부추 등 야채는 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 먹었다.

파리와 부근 지역은 많은 야채를 제공하는데 모든 수프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양상추, 완두콩 및 콩 등 단백질이 풍부한 야채였으며 감자는 쌀처럼 훨씬 늦게 (16 세기부터) 도착하였기 때문에 중세 초기에는 파리에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과일, 때로는 꿀에 절인 과일이나 아몬드 같은 시리얼은 공기 중에 있는 나무의 줄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신성한 식자재로써 꽤 차려진 상자리에서 중요한 식자재였다.

 

고기 또한 같은 이유로 조류가 특히 인기가 많았으며, 그 외에 소고기, 양고기 등 꼬치구이나 조림으로 먹었으며 송아지 고기는 가장 고결한 고기로 통했다고 한다. 또한 고급 상차림에는 새, 사슴, 노루, 왜가리, 백조 또는 공작 등을 고급 고기로 생각했으며, 귀족들 사이에서는 본인이 사냥한 동물을 먹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주로 구워서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 가축을 길러 그들의 주된 농산물인 계란, 우유, 양모를 생산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는 서민 식사에서 중요한 고기 중에 하나로 돼지고기의 베이컨은 종종 빵이나 수프를 풍부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귀족들은 주로 구워 먹었지만 서민들의 고기의 육즙까지도 아까워서 주로 삶아 먹었다.

 

기름기 없는 고기 먹는 날

 

기름기 없는 고기 먹는 날에는 고기는 대신 빵 위에 생선이 올라오는 날로써 제법 이 날을 선호했다고 한다.

종교 축제의 일, 성도들에게 바치는 공물 또는 마을 지역의 축제일 또는 매주 금요일등 연간 100 일 이상이 생선을 먹는 날이었다.

 

아주 빈곤한 사람들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된 청어만을 먹을 수 있었으며, 조금 덜 가난한 사람들은 오징어를 살 수 있었고, 부르주아들은 고등어, 대구, 장어, 연어 또는 곤들 매기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4 세기에 쓰인 중세 프랑스 요리에 대한 참고 문헌인 ''Le Mesnagier de Paris/ 르 메니지에 드 파리''에 따르면 몇몇

생선 레시피로 차갑게 한 갈랑틴(양념을 넣어 삶은 생선을 차갑게 굳힌 것), 저린 붉은 숭어 또는 시나몬 소스와 정향,

후추와 사프란을 넣어 만든 굴 스튜 레시피 등이 소개되어있다.

금욕과 성찰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지만 파리 귀족과 브르주아들에게는 관계가 먼 이야기인듯하다!

 

이미지출저:thymemachine cuisine

르 메나지에 드 파리 (Le Ménagier de Paris)는 결혼과 가정에서의 여성의 올바른 행동에 관한 1393 년 프랑스 중세 가이드 책으로 부부관계 조언, 요리 레시피 및 원예 팁이 포함되어있다. Wikipedia 

허브와 향신료

 

십자군들이 가져온 향신료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요리 시 소스, 국물 또는 고깃국의 재료로써 늘 허브 또는 향신료가 첨가했는데 많이 넣을수록 좋아했다고 한다. 비싼 재료이므로...

 

그러나 이런 이국적인 향신료는 가난한 서민들은 감당하기 힘든 사치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에서나 자라는 겨자로 대체하거나 식료품점에서 그나마 좀 싼 파슬리, 백리향, 세이지 또는 월계수 등을 갈아서 익지 않은 포도에서 추출한 산성 주스인 Verjus와 혼합해 향신료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 당시 식료품점에서 잘 나가는 향신료는 후추, 정향, 생강, 계피, 육두구였으며 또 아프리카에서 온 귀한 사프란을 판매했다고 한다.

 

중세의 음료

이미지출저:openeditionjournal

중세시대 파리지앙들은 와인을 특히 많이 마셨다고 하는데 그 당시 1인당 하루 2 ~ 3 리터를 마셨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파리 근교는 매우 중요한 와인 재배 지역이었으며 가난한 서민들은 선술집에 가서 싼 포도주를 한통씩

사서 마셨는데 지금처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물에는 석회가 많기 때문에 술로 물을 대신했다고... 지금처럼 물을 끓여 마신다는 개념이 없었던 거일까?

홉이 풍부한 맥주도 중세에 파리에 미리 알려져 있어 지난 생각보다 그리 많이 소비되지 않았다가 중세 중반 이후부터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고... 차가 등장한 것은 17세기, 커피는 18세기이다.

 

디저트 같은 간식

 

15세기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길드''라는 과자가 등장하게 되고 14세기~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제빵, 제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데 16세기 설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과자들이 등장하여 귀족들의 화려한 상차림에 많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물론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낸 디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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