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남긴 결과물인 전염병과 중세의 흑사병과 오늘날의 팬더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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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남긴 결과물인 전염병과 중세의 흑사병과 오늘날의 팬더믹

by today paris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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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우리가 예상치 못한 팬더믹이라고 불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가 거의 비정상인 생활로 반 마비 상태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옛날 대비 여러 감염병이나 전염병에 잘 대처하고 해결책을 찾아냈지만 이번 팬더믹 코로나 19는 정말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느낌이며 중세시대 유럽의 흑사병이 퍼졌을 때 마녀 사냥처럼 전 세계 곳곳에 증오범죄사건이 터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중세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없는 거 같다.

 

흑사병을 치료하기 위한 그 당시 의사복장

 

흑사병, 이 전염병은 중세 시대에 5 천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다.

14 세기 중반, 전례 없는 전염병이 아시아와 유럽을 강타하여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흑사병"이라고도 알려진 이 전염병은 당시 ''신성한 형벌''로 여겨졌다. 

 

이 끔찍한 전염병의 기원과 진화로 돌아가 보자.

끔찍한 대지로 만들어 놓은 흑사병은 1347 년 10 월 이태리 흑해 연안 도시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에 12 척의 배가 도착하게 된다. 부두에 모인 구경꾼들은 그들의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선원들은 죽어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두운 종기로 뒤덮여 심하게 아파하고 있었다.

 

시칠리아 당국이 이"죽음의 배"를 항구에서 보내라고 명령하기엔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를 계기로 향후 5 년동안

흑사병은 유럽에서만 2 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으며 그당시 유럽 인구의 거의 1/3을 죽이게 된다.

 

또한 전 세계 5 천만 명의 피해자를 낸 이 끔찍한 전염병의 기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이 "죽음의 배"가 메시나 항구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많은 유럽인들은 근동과 극동의 무역로를 따라 퍼졌을 "대역병"에 대해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1340 년대 초에 흑사병이 이미 중국, 인도,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를 강타했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런 흑사병의 끔찍한 전염병에 대해 전혀 준비하질 않았고 이 질병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발생했으며,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커다란 종기와 함께 혈액이나 고름이 새는 것이 특징이었다. 감염된 사람들은 열, 구토 및 설사를 했고 일반적으로 증상이 나타난 후 3 일 후에 사망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흑사병이 "Yersina Pestis"(19 세기말 프랑스 생물 학자 Alexandre Yersin에 의해 발견됨)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공기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었지만 주로 이, 벼룩 및 쥐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유럽에서 유달리 매우 빨리 강타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항구 도시가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특히 선박을 통해 가장 많이 전파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태리 메시나 항구도시를 강타한 직후 흑사병은 가장 근접한 프랑스의 큰 항구도시 마르쎄이와 튀니스 항구로 퍼져

나간 다음 무역로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로마와 피렌체에 퍼지게 되었고 1348 년 중반에는 파리를 비롯 보르도, 리옹, 런던에 점점 퍼지게 된다.

중세 프랑스 항구도시 마르쎄이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모습

그 당시 유행병의 급속한 전염은 합리적인 원인을 따로 찾아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전염병이 환자에서 환자로 어떻게 퍼지는지 그리고 이 흑사병에 대한 예방 또는 치료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의사들은 단지 피를 뽑아내는 등 아주 초보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기술과 미신적 관행인 자연요법으로 허브향을 흡입한다든지 , 식초로 목욕을 한다든지에 단순히 의존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은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심지어는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숲에 버리거나 바다에 빠트려 죽이기도 했다. 의사들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의 진료를 점점 거부하기 시작했으며, 종교 사제들은 그들을 위한 마지막 의식 집행을 피했고, 상인들은 상점을 닫았고 한다.

 

최근 흑사병을 전파했던 것이 쥐라는게 크게 과장되어 전해 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흑사병"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시에서 시골로 많이 도피했지만 결국 소, 양, 염소, 돼지 및 닭들도 걸리게 된다.

이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많은 양의 수는 유럽에 심각한 양모 부족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렇듯 전염병이라는게 가축들과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많이 보도되고 있지는 않지만 팬더믹 코로나 19로 동물들의 확진도 의심되고 있다고 한다.

 

이 흑사병 재앙에 맞서 무력한 유럽인들은 흑사병을 일종의 신의''신성한 보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 전염병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용서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1348 ~1349 년 사이에 주로 유대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이단자"가 이 제물의 목적으로 잔인하게 학살당했으며 나병환자 또한 신의 저주라 불리며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었다.

 

오늘날 끝나지 않는 팬더믹 코로나 19로 인해 이유없이 아시아인을 혐오하여 일어나는 증오범죄를 뉴스를 통하여 접하다 보니 중세와 별다르지 않은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한다.  

 

이 끔찍한 전염병인 흑사병은 1350 년대 초에 끝났지만 다음 세기에 걸쳐 정기적으로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그때보다는 여러 면에서 최첨단의 시스템과 연구진, 의학진이 백신이나 약물 치료제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뚜렷한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는 없으며 백신 또한 맞고 있는 과정에서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어가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동안 누려왔던 당연한 자유에 대한 기대가 또 한 번 미루어지게 되었고 예측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언제 가는 오겠지만 더 이상은 예전같이 우리가 누렸던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 같다. 

 

무지한 중세시대의 흑사병은 5년 만에 거의 종식되었지만..

그래도 21세기 고첨단 시스템의 의학, 과학 연구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전 세계의 수많은 의료진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하며 모두가 이성적인 사고를 놓지 않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위생 규칙에 준수하다 보면 이 길고 긴 팬더믹과의 싸움도 곧 종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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